고급문덕생활자의 수기.


견습키튼_단테 알리기에리가 새겨진

깊은 초록빛의 오로라가 손에 쥐어진다면

나의 영혼은 구원받으리라.



그간 자신이 잡지 편집장이면서 그 잡지의 모든 호에 자신의 글을 실었던 자가 있다. 그는 지난 호에 문방구에 대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의 활동, 소위 문덕질에 관한 짧은 한편의 나불나불을 실었다. 흥미로웠다.


“아, 문방구에 이리 애착을 가지는 자가 내 주변에 있긴 있었구나.”


그저 나만의 즐거움인 줄 알았던 일이 다른 누군가의 즐거움이기도 하다는 감격은 생각보다 컸다. 역시 아직 이 세계는 살만한 곳이라는 위안을 가졌고, 함께 걸어갈 동료와 희미하게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글을 계속 읽어가면서 일어났다. 그 자는 문덕이기는 하지만 나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문방구를 사랑한다는 본질적인 마인드는 같았지만 그것을 사랑하는 방식과 사랑하는 문방구의 차이는 꽤나 컸다. 그 자의 말을 빌리자면 문방구에 투여하는 정체성이 상당히 달랐다.


“이자, 뭘 모르는구만.”


이렇게 되니 슬몃슬몃 올라오는 감정은 비웃음이었다. 좀 전까지의 그 반가움은 저 구석으로 사라지기 시작하고 차가운 비웃음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 자는 링코, 모닝글로리 등등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문방구점에서 문방구들을 ‘구경’하고 ‘구입’한다. 그러나 나는 교보문고의 고급 필기구 매장들에서 문방구들을 ‘감상’하고 ‘모셔’간다. 그 자는 호주머니에도 있을 법한 돈으로 다양한 상품을 구입하지만, 나는 고통을 인내하며 쌓아둔, 현금으로 들고 다닐 수 없는 돈을 하나의 작품에 투자한다. 그가 사랑하는 문방구들은 프롤레타리아들이고 내가 사랑하는 문방구들은 귀족들이다.


우리는 문덕 세계의 시민이었지만 계급이 달랐던 것이다. 이 계급의 차이는 비웃음을 낳고 비웃음은 갈등의 씨앗이었다. 좁디좁은 문덕 세계에 분열이 일어날 조짐이었다. 그 옛날 자부심이 넘치던 그리스 아테네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자기 땅을 가지고 번쩍이는 청동 방패와 투구와 정강이 바지를 가진 중갑보병 출신의 농민 계급, 마땅한 땅도 없고 마땅한 전투 도구도 없이 노 젓고 갑판에서 칼 휘두르던 수병 출신의 도시 임노동자 계급.


 “청동 방패도 없고 우정 넘치는 진을 구성해보지도 못한 무지랭이들과 같은 시민이라니!”


이들이 같은 시민으로서 동등한 위치에 서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같지 않은데 같게 되어버린 것에 대한 분노는 분열을 낳았고 분열은 혼란으로 치달았다. 혼란은 결국 아테네의 쇠망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중갑보병의 마음이었다. 고급 필기구에 파커나 몽블랑을 꼽는 그 무지함이라니! 오호 통재라, ‘고급’의 의미가 어찌 이리되었단 말이냐! 혼란의 시대에 언어의 의미가 변질된다더니 과연 투키디데스의 말은 옳았다. 필기구에 ‘학문’이라는 고상한 가치를 투여하는 자들은 고급 만년필로 오직 오로라를 꼽는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고 이제 막 공부하겠다고 낑낑거리는 사람들은 14K 금장 촉을 단 옵티마 레진 정도로 만족하는 세계, 그 위의 고수들은 18K를 장착한 한정판들만 인정하는 진정 고급의 세계가 있다. 그런데 몽블랑이라니! 그 비싸기만 한 부르주아들의 사인용 만년필이 어찌 고급이던가!


그리고 필기구에 어찌 연필이 빠진단 말인가! 필기구의 범주 안에 노트와 펜이라니, 이럴 수가 있는가! 당연히 이이는 보통의 문구점에서 고급품으로 분류될 스테들러(STAEDTLER) 정도 밖에는 모르리라. 1761년부터 연필의 세계에 종사해온 연필계의 명품 파버 카스텔(Faber-Castell)이 있음은 중요치 않으리라. 그리고 연필의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원목 바디와 글씨를 많이 쓰는 자들을 위한 1.4두께의 심을 자랑하는 이모션 트위스트 펜슬의 가치 역시 모르리라.


노트도 가슴이 아프다. 1000원짜리 모닝글로리에 벌벌 긴다니. 다양한 노트에 눈이 돌아간다니. 노트의 기본은 분류와 재분류의 편의성과 잉크를 견디어내는 힘임을 모른단 말인가. 매끈하고 우아한, 탁하고 힘을 주면 샥 하고 분리되는 무극사 3공 노트들을 모른단 말인가. 잉크가 펑펑 나오는 오로라도 견디어내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어주는 무극사 노트들을 모른단 말인가.


“하, 진정 고급에 대한 감각이 없는 자들의 세계는 참으로 비루하다! 이자가 나와 같은 문덕으로 분류된다니 이럴 수는 없다!”


비웃음에서 출발했던 감정은 그렇게 한탄이 되고 분노가 되어갔다.


“저 자를 문덕의 세계에서 내치리라.”


심각한 계급적 갈등이 잔인한 감정을 가지게 했다. 이 잡지를 만드는 또 한명의 편집진이 있다. 아담하고 우아한 그러나 식사를 새 모이만큼 하는 그런 분이다.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비루한 문덕질을 얼마나 비웃었던지. 거만한 표정으로 나의 오로라를 꺼내들어 모나미와 BIC를 언급하는 그의 말들에 얼마나 흠집을 내었던지. ‘저자는 문방구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었다. 그녀는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었네.’로 결론을 내렸고 나는 만족했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오로라를 만지작거리고 파버 카스텔을 만지작거리다 필기의 표시와 분류를 위해 사용하는 플레이칼라들이 보였다. 그리고 3M의 스티커들도 보였다. 그들은 비록 싸구려들이지만 나의 소중한 자식들이었다. 물론 오로라가 없어지면 나는 자살을 할 것이고, 플레이칼라가 없어지면 그냥 다시 가서 사겠지만 그래도 그들 또한 사랑스런 아이들이었다. 그들도 ‘학문’이라는 근본적인 정체성이 투여된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하! 내가 이리 멍청했다니!”


몇 달 전 잠깐 훑어본 진보신당 당원 게시판을 잊었단 말인가. 그들은 모두 이 나라에서 한 줌 안 되는 좌파를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세계가 조금 더 평등하길 바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끔찍했다. 저자는 스탈린주의자니 고루한 맑스주의자니 하면서 그들은 무섭도록 서로의 흠집을 잡아냈다. 그들은 자신이 옳음을 보이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는 방법 밖에는 모르는 듯 했다. 그 한줌 안 되는 세계에서의 영역 다툼은 참으로 참담했다(사실 내가 좌파가 아니라 그렇게 참담하진 않았다).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사용되어야할 에너지를 서로를 잡아먹는데 사용하는 것을 보며 혀를 찼었다.


그렇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한줌 안 되는 문덕의 세계다. 철딱서니 없는 몇몇의 좌파들처럼 지들끼리 싸우느라 에너지를 쏟아서는 안 된다. 중갑보병과 수병들의 서로에 대한 비웃음과 한탄과 분노가 아테네를 쇠락의 길로 인도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덕의 세계 밖에는 필기구에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을 비웃는 자들이 널리고 널렸다. 성찰을 담을 도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은 드물고 드물다. 그 드문 동료의 흠집을 잡아 뜯어서 남는 것이 없다.


그와 내가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시민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지 ‘고급’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그도 옷이 아니라, 신발이 아니라, 그 죽일 놈의 문방구들에 돈을 부어대는 인간임이 중요한 것이지, 연필을 잠깐 빠뜨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적은 다품종 대량생산 문방구에 환장하는 프롤레타리아 문덕이 아니라 문방구를 ‘따위’로 취급하는 악한들이건만 나는 너무도 어리석었다.


치열했던 자기반성은 끝났다. 작은 흠집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일 뿐이다. 대화는 공통의 것을 공유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공통의 것을 공유했음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공통의 것을 넘어 더 넓은 세계를 알고자 할 때 가능하다. 대화가 작은 세계를 넓혀주고 만들어진 세계가 붕괴하지 않도록 잡아준다.


프롤레타리아 문덕은 나에게 대량생산된 저렴한 세계를 열어줄 수 있고 반대로 나는 그를 손으로 만든 걸작들의 세계로 초대할 수 있다. 그는 다양함이 가져다주는 고뇌를 토로할 수 있고, 나는 그에게 더 고귀한 한정판의 세계에 닿을 수 없는 절망을 들려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 풍부하고 더 깊은 문덕이 될 수 있다. 더 깊고 풍부한 문덕질 속에서 다듬어지는 우리들의 성찰은 한 걸음씩 문덕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으리라.


하… 그런데 오로라와 파버 카스텔의 세계를 모르는 문덕이라니. 가슴은 그래도 아프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그의 잘못일까. 혼란한 세상에 문방구와 고급의 의미가 달라져서 그런 것을.




Posted by windycorner

2011/12/04 14:56 2011/12/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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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없는 것들, 미친 여자들, 무서운 아이들

- 영화와 소설 속 미친 여자들에 대한 변명


CheddarCat_후회없음



  (……) 옛날 옛적, 무인도로 알려진 섬이 있었다. 암초와 산호초에 둘러싸인 이 섬은 하루도 멈추지 않는 세찬 파도가 휘몰아쳐 누구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육지에 문명을 건설하고 사는 혼기 가득 찬 사내들은 이 섬에 무척이나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삼단 같은 머리를 풀어헤친 아름다운 소녀가 노래를 부른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하여 미지의 섬을 정복하려는 꿈을 꾸었다.

  어느 날, 역시 소문에 홀린 어느 건장한 청년이 아홉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 섬으로 숨어드는 데 성공했다. 떠도는 말과 달리 섬에는 여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섬은 마치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다. 대부분은 온몸의 구멍을 틀어막은 채로 바짝 말라 죽은 채였고, 그나마 살아 있는 자들도 모두 입이 없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미치광이였던 것이다. 청년이 해변에서 발견한 시신의 입 속에는 퇴화된 혓바닥의 흔적과 검은 잎사귀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시신의 배를 가르자, 밖으로 뱉어내지 못하고 가슴 속에 갇힌 단어들이 시꺼멓게 내장 이곳저곳에 들러붙어 있었다고 한다. 구역질을 하며 가까스로 섬을 빠져나온 남자는 일생동안 자기가 본 것들을 결코 발설하지 않았다. 아마 그랬다고 해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거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이야기의 신화적 원형에서 남성은 언제나 미션을 부여받고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중세 이야기에서 기사는 용맹하게 용을 무찌르고 때로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주어진 관문들을 통과하고 추구하는 것(부와 명예, 그리고 공주!)을 성취하며, 성장한다. 『그리스 인 조르바』, 『콜레라 시대의 사랑』, 혹은 『백 년 동안의 고독』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많은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도 완전한 자유와 사랑을 추구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은 어김없이 남성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인간 보편’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동안 여자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문학, 그림, 영화, 혹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다른 모든 예술 장르에서 여성과 광기는 낯익은 조합이다. 오필리아부터 캐리까지, 지금 바로라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미친 여자 몇 몇은 손쉽게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남성 주체들이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 절대 가치를 추구하는 동안 어째서 어떤 여자들은 벙어리가 되거나 미쳐서 다락방에 감금당하게 되었을까? 이 글은 도대체 소설과 영화 속에는 왜 이렇게 미친 여자들이 많이 나올까? 하는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하였으며, 몇 편의 소설 혹은 영화를 통해 그녀들을 탐구하고 그에 (감히) 의미를 부여해보려는 시도로 쓰였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1)』에 등장하는 앙투아네트 역시 저 섬의 여자들처럼 살았을 것이다. 식민지의 몰락하는 크레올 집안에서 태어난 앙투아네트는 영국인 로체스터와 결혼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핏줄에 흐르는 광기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점차 실패한다. 처음 앙투아네트의 신비롭고 원시적인 매력에 푹 빠졌던 로체스터에게 더위와 전염병, 의미를 알 수 없이 그를 압도해오는 식민지 자연의 풍광은 점점 ‘미친’ 앙투아네트와 겹쳐 보이고, 그의 집착과 배신은 그녀를 광기와 파멸로 몰아간다.

  이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광막한 바다’는 백인 서구 남성인 로체스터와 식민지 여성인 앙투아네트 사이의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정, 문명과 자연, 서구와 비서구와 같은 대립쌍은 사실상 이분법으로 위계화 된 범주들이다. 즉 로체스터로 대표되는 한 쪽(남성-이성-문명-서구)은 반대편의 앙투아네트(여성-감정-자연-비서구)을 위치시킴으로써 존재할 수 있고, 우위에 설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반대쪽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를 영국으로 데려가 고향인 자메이카로부터 분리시키고, 다락방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그녀를 정복하려고 한다. 이는 로체스터가 앙투아네트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행위에서도 드러난다. 어느 순간부터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 대신 버사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부른다(그녀는 그 새로운 이름을 싫어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정복한 후 그들을 새로운 이름으로 호명함으로써 정복을 재확인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여성들은 오랜 시간동안 타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남성 자아가 자신을 비춰 봄으로써 통합되고 완전한 주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거울’의 역할을 수행했다. 거울의 속성은 무엇인가? 거울은 비추기만 할 뿐,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는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여성들은 당당한 주체로 설 수 없다. 그리하여 언어에 기댈 수 없는 그녀들은 입을 다문 채 침묵하거나, 죽음을 택하거나, 때로는 반 미친 상태로 바다 위를 떠돌게 되었다. 줄리언 반스의 『10과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2)』의 한 장-「생존자」-에 등장하는 여자처럼.

  이 소설에는 핵에 대한 집착과 공포를 가진 여자가 등장하여 고양이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떠돈다. 체르노빌 뉴스를 들은 그녀는 세상이 핵전쟁으로 인한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순록을 믿으며, 방사능에 오염되어 죽인 순록을 매장하지 않고 밍크에게 먹이로 주는 사람들에게 ‘매장을 하면 올바른 수치심이 생기지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자의 모든 말은 그녀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자 친구와,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호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정신과 의사에게 무시당한다. 이들은 결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억압은 언어에서부터 시작된다. 강자의 언어는, 끊임없이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장소에 약자를 위치시키면서도, 약자의 언어를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 그녀는 매번 부연 설명을 해야 하면서도 ‘감정적’, ‘비이성적’, ‘감상적’인 취급을 받는다. 그녀의 불평이나 불만은 그저 ‘피해의식’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녀를 무시하고 구타하는 남자 친구, 비정상 취급하며 ‘치료’하려 드는 정신과 의사,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핵을 만들고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모두가 공모자가 되어 그녀의 입을 막은 것이다. 그들이 점령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녀는 살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육지를 떠나 바다 위를 떠돌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입 없던 존재들이 변종이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녀로 몰리거나, 다락방에 감금되거나, 미친 여자 취급을 받던 여자들과 다르면서도 또 같은 이 변종들은 고전적인 1세대 광녀들이 낳은 후손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지 모르겠다. 이 진화한 형태의 미친 여자들은 억압된 분노와 광기를 내부에 억누르는 대신 분노를 밖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억압된 체계의 피해자로 남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말을 ‘들리게’ 하기 위해 외국어를 말하듯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따라서 권위 있는 아버지의 언어, 법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들은 직접 가해자를 처단하거나, 무차별적으로 복수의 화살을 날린다.


  <하드 캔디3)>의 헤일리는 파괴적인 예이다. 순진한 십대 소녀인 척하는 그녀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꼬셔낸 잘나가는 사진작가 제프 앞에서 무서운 아이로 돌변한다. 그녀는 도나 마우어라는 청소년 성폭력 살해범으로 제프를 지목하며,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몸소 친절하게 제프의 거세 수술을 진행하기까지 한다4). 수술대에 꼼짝없이 묶인 제프는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헤일리는 듣지 않는다. 역전된 위치에 처하고 나서야 제프는 그가 '쳐다보고, 만지고, 상처주고, 망가뜨리고, 죽여 버린' 모든 소녀들의 대변인인 헤일리의 목소리를 비로소 ‘듣게’ 된다. 즉, 약자의 언어 자체가 가진 결함이 그 말을 들리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강자의 위치가 그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만든 것이다. 헤일리와 죽이 잘 맞을 것 같은 친구로는 아마 김사과의 소설 『미나』에 등장하여 무서운 에너지를 발산하며 테스코 칼로 친구를 찔러 죽이는 수정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녀가 왜 친구를 찔러 죽이는지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아마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똑똑하고 집도 잘 살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문제 삼는 수정이, 위에서 얘기한 미친 여자들처럼 가부장제의 억압 속에서 출현했다는 해석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헤일리와 수정을 잇는 키워드는 ‘의외성’이다. 수정도 헤일리도 전혀 우리가 아는 십대 소녀스럽지 않다. 도대체 누가 하이틴 소설이나 읽고 아이돌 오빠들이나 쫓아다니는 한심한 존재로 비춰지기 일쑤인 여고생이 이렇게 폭주할 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어쨌거나, 위에 언급한 다른 그녀들은 어떤 방식으로 미쳤든지 간에 모두 가부장제가 설정해 놓은 정상의 테두리에 들어갈 수 없는 여자들이다. 체제는 그녀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낙인을 찍고 흠집을 잡아 주변부로 추방하려고 했다. 중심부는 끊임없이 자신으로부터 주변부를 구분 짓고 배제하는 테두리를 설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체계의 공고함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녀들의 언어에 흠집을 내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들고 이를 ‘미친’ 범주에 넣으려고 애쓴다. 

  이 ‘흠집 잡는 작전’은 도리어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다고 뽐내고 싶어 하는 세계가 사실은 완벽하지 않음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다. 체제의 주인처럼 군림하는 사람들은 타자인 그녀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함을 만들어 그들을 영원히 그 자리에 붙잡아두려 했는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그것이 균열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 요소’임은 간과했던 것이다. 입 없는 것들은 언제까지나 입이 없는 상태로 죽어지내지 않을 것이다. 광기와 정신질환과 히스테리는 사실, 억압의 구실임과 동시에 그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저항의 방법을 찾아 귀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직 출현하지 않은 새 변종의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소설 속, 영화 속, 이야기 속,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억압받고 상처 입은 자들도 계속 진화하고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1) 진 리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Wide Sargasso Sea)』, 1966. 도미니카 크레올 출신의 영국 작가 진 리스는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버사의 모습에 분노하며 그녀의 삶을 재구성한 이 소설을 썼다. 로체스터의 전 부인이자, 결국 화재로 불에 타 죽고 마는 다락방의 광녀 버사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서 아름답고 슬픈 앙투아네트로 새롭게 태어난다. <제인 에어>에 대한 포스트모던, 포스트 식민주의 소설.

2) 처음 한국에 출간되었을 때 서점의 역사코너에 꽂혀 있기가 다반사였다는 이 소설의 원제목은 The History ~가 아닌 A History~이다. 노아의 방주와 생존자라는 공통 소재는 소설, 수필, 서간 등 다양한 장르로 쓰인 장에서 반복되고 변주되며 서로 공명한다. 여튼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밌는 책이니 읽어 보시고 이 글에서는 제 4장인 「생존자」만을 다룬다.

3) 영화는 열네 살 소녀 헤일리(엘렌 페이지)와 서른두 살 사진작가 제프(패트릭 윌슨)의 인터넷 대화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꼬시고 떠보는 말 몇 마디가 오간 뒤 다음 장면에서 둘은 동네의 한 카페에 마주보고 앉아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하고 이 영리한 ‘꼬마 숙녀’는 제프가 갖고 있다는 골드프랩 콘서트 실황 mp3를 얻기 위해 제프의 집을 방문한다. 헤일 리가 만든 스크류 드라이버 한 잔씩을 걸치고 그녀의 사진을 찍어주던 제프는 이유모를 어지럼증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한참 뒤 깨어난 그에게 싸늘하게 돌변한 헤일리는 말한다. “어른들이 자기가 직접 섞은 거 아니면 마시지 말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 근데 너 소아성욕자(pedophile)지?” 

4) 반전이 있는 영화라 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windycorner

2011/12/04 14:53 2011/12/0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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